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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일상

온양온천과 세조임금

2013년 10월 터키와 그리스 출장을 갔다. 그때 70대 후반의 손님이 한 분 계셨는데, 본인 사진을 많이 찍어달라고 하셨다. 여행을 다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사진을 인화해서 꼭 보내달라고 하셨다. 총 30장이 넘는 사진을 인화해서 우편으로 보내려니 그것보다 포토북을 만들어 직접 찾아뵙는 게 낫겠다 싶었다. 

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천안으로 내려갔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 그 분을 만나고 점심식당으로 향했다. 갈비찜을 맛있게 먹고 다시 올라가려는데, 천안이니 안 들를 수 있나? 유명 호도과자집에 들러 호도과자를 사 주신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15년 12월, 또 천안에 갔다. 이번에는 좀 일찍 도착했다. 오전 10시 30분. 시간도 너무 이르니 온천을 가자고 하신다. 온천? 고민이 좀 되었지만 가기로 했다. 온양온천으로 향했다. 

이스탄불 소피아 박물관

 

어느 호텔의 온천이었는데 로비에 큰 사진액자가 걸려 있었다. 그러고 보니 하노이에서 본 72층 빌딩이었다. 이곳 온천호텔과 무슨 인연이 있길래? 

 

충청남도 온양이 온천으로 이름나게 된 데는 기막힌 사연이 있다. 바로 수양대군 세조임금과 단종임금에 관한 이야기다. 속리산의 동학사에 간 적이 있다. 

 

세종과 소헌왕후의 맏아들 문종이 즉위 2년 만에 승하하시고 그의 아들 단종이 즉위하였으나 둘째 아들인 수양대군이 단종을 폐하고 임금의 자리에 오른다. 세종대왕의 셋째아들이자 수양대군의 동생 안평대군과 그를 따르던 당대의 내로라하던 학자들이 목숨을 잃는다. 안평대군의 꿈 이야기를 듣고 화가 안견이 그림을 그렸다. 곧 몽유도원도이다. 

천안 장항선 갈비집에서

 

이 소식을 듣고 매월당 김시습은 머리를 깍고 동학사에 와서 통곡을 하였다. "숙모전"은 세조 2년 김시습이 노량진 강변에 버려진 사육신의 시신을 장례지낸 후 삼은각 옆에 단을 만들고 제사한 데서 비롯되었다. 

 

어느 날 세조의 꿈에 단종의 어머니가 나타나 죽이지만 말라고 애원하기를 3일. 하지만 세조는 결국 단종에게 사약을 내린다. 그 이후 세조는 "만신창"이라는 불치병을 얻게되는데, 세조는 불심으로 병을 고치고자 속리산 법주사에 갔다가 동학사에 들른다. 이때 삼은각 옆의 단에 대해 알게 되자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망자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초혼각을 건립하였고, 영조 4년에 불탄 것을 고종 1년에 다시 지으면서 숙모전으로 이름을 고친다.

청령포의 단종어소

 

당시 세조가 들른 곳이 바로 온양의 온천지대이다. 세조가 온천을 하고 만신창이 낫게 되자 그 이후 여러 임금이 온양에 들렀고 온궁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온천 사우나를 하였다. 그 분이 "이봐 박실장, 등 좀 밀어줘". 그 분의 등을 밀면서 문득 아버지 생각이 났다. 어릴 때는 목욕탕에 같이 가서 등도 밀어드리고, 퇴근하고 집에 오시면 안방에 들어가 다리도 주물러 드리곤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좀 컸다고 목욕탕에도 같이 안가고, 안마도 안해 드렸다. 후회가 되었다.

 

온천 사우나를 마치고 지난 번의 갈비집에 또 들렀다. 갈비탕을 한 그릇 먹고 그 분이 "이번에는 내가 자네 구경시켜줄께"라고 하셔서 독립기념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유관순 열사 추모관에 들렀다. 천안시내로 들어가 그 분을 내려 드리고 집으로 올라왔는데 두달후 집에 딱지가 날라 왔다. 속도위반! 아마도 시골길에서 아차 실수를 했나보다. 

 

많은 걸 알게 된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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